사람과 자연, 모두에겐 각자의 자리가 있다
곳니는 다른 멧돼지와는 조금 다르다. 산에서 태어났지만 집돼지와 함께 사람 손에서 자랐다. 곳니가 어른이 되자 집돼지 엄마의 걱정은 많아진다.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멧돼지가 언제까지고 집돼지와 함께 살 수는 없는 터였다. 더욱이 주인은 곳니와 함께 자란 진돗개 꿍이를 사냥개로 팔아넘기려 하고, 곳니의 생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꿍이와 곳니에겐 선택권이 없다. 사냥개가 되기 싫어 집을 나갔던 꿍이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집돼지 엄마 말대로 그게 꿍이의 정해진 길이다. 집돼지 엄마는 곳니에게 원래의 자리, 산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꿍이가 돌아온 날, 곳니는 산으로 향한다.
사람 곁이 꿍이의 자리이듯, 멧돼지들이 사는 산이 곳니의 자리이다. 다시 만난 꿍이와 곳니는 과거의 친구에서 이제 싸워야만 하는 상대가 되었다. 어쩌면 지금 사람과 자연이 그러한 모습이 아닐까? 한때 사람은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며 먹을 것을 구하기도, 또 자연을 푸르게 가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을 가꾸기보다 개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의 태도가 바뀌면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만난 꿍이와 곳니가 서로의 자리를 인지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 사람도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 덤벼라 꿍!
2. 산짐승
3. 금니야, 안녕!
4. 꽃발을 치다
5. 검은귀
6. 짝귀와의 한판
7. 대장 멧돼지 곳니
8. 사냥꾼
9. 죽음과 탄생
10. 꿍이
11. 바람이 되다
사람과 자연, 욕심을 부린 것은 누구일까?
곳니는 낯선 산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지면서 야생에서 사는 법을 하나둘 깨우친다. 서투른 것투성이었지만 멧돼지의 본능이 깨어나며 어느새 자신의 자리까지 만들게 된다. 사람과 함께 살며 얻은 경험은 곳니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형제들을 죽인 짝귀와 맞부딪쳤을 때 곳니는 진돗개 꿍이와 싸우던 일을 떠올린다. 꿍이는 곳니의 뒷발 발꿈치가 약점인 것을 알고 꼭 그곳을 공략했다. 짝귀의 약점도 뒷발 발꿈치일 것이다. 그렇게 곳니는 짝귀를 물리치고 멧돼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혼자가 된 짝귀는 먹을 것을 찾아 마을까지 내려갔고, 이에 사람과 멧돼지의 전쟁이 시작된다. 짝귀를 말리려고 찾아간 곳니는 짝귀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사람과 멧돼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자리를 넓힌다는 것은 사람들의 자리까지 넘본다는 뜻이에요.”라는 젊은 멧돼지의 말에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우리 자리를 뺏은 것은 아니고?”라며 반문한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멧돼지가 사람의 자리를 침범한 것이다. 그렇기에 총을 들고 멧돼지를 쏘아 죽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멧돼지가 어쩌다 사람들 사는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사람들은 개발을 한다며 산을 깎고 파헤쳤다. 동물들이 살 터전이 줄어들었고, 먹이를 구할 곳 역시 줄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도토리며 약초며 동물들이 먹을 것까지 모조리 주워가 버렸다.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궁해진 동물들은, 목숨을 걸고 산을 내려온 것이다. 오직 살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 욕심을 부린 것은 누구일까? 배고픔에 지쳐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 멧돼지일까, 아니면 풍족하게 살기 위해 멧돼지들이 사는 자연을 파괴한 사람들일까.
「대장 멧돼지 곳니」는 곳니가 대장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보여 준다. 또한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지하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