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 손을 잡고 집을 나서던 날,
엄마는 내 손을 잡지 않았어요
유년 시절의 경험은 오랫동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즐겁고 유쾌했던 기억이 몸과 마음에 건강한 밑거름이 되는가 하면, 별것 아닌 작은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물지 않고 아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외할머니네』 속 수영이에게도 엄마와의 짧은 이별은 아마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될 것 같아요.
수영이에게 동생이 생겼습니다. 오물오물, 고물고물 아기는 잘 놀다가도 툭 하면 울었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 울기도 했어요. 아기도, 수영이도, 엄마도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결국 엄마는 수영이를 외할머니에게 보내기로 했지요.
기차에 올라 깜빡 잠이 든 사이 할머니 집에 도착했어요. 외할머니네는 시골집이었어요. 마당에는 풀과 꽃, 나무 들이 자라고 있었고, 부엌에는 아궁이마다 까만 무쇠 솥이 들어앉아 있었어요. “쉬익, 쉬! 쉬!” 밥 짓는 소리가 꼭 기차 소리 같았지요.
외할머니는 수영이가 무척 안쓰러웠던 모양이에요. 볕 좋은 오후, 마루 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영이의 입에 고소한 누룽지를 넣어 주고,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도 시켜 주었어요. 목욕을 마치고 나서는 달콤한 초코 우유도 주었지요. 다락의 비밀 창고에서 맛있는 눈깔사탕도 꺼내 주었지요. 외할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수영이는 시골 생활에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속마음과 다르게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 말하면서요.
그러던 하루는 기찻길 옆에 서 있는 소달구지를 보았어요. 소달구지를 끌고 가던 어미 소가 트럭에 실려 가는 송아지를 보았지요. 송아지들은 이제 어미 소를 못 만날지도 모른대요. 송아지들이 우는 걸 보면서 수영이는 엄마 생각이 났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어른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아이들의 순하고 따뜻한 동심
태풍에 헛간 지붕이 날아가던 밤, 수영이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삼 일 동안 열뜬 소리로 “엄마, 엄마!” 불렀지요. 찬물 적신 물수건을 수영이 이마에 올려놓던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고 야무지게 말했지만, 실은 수영이가 엄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할머니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참고 참았던 그리움이 몸을 아프게 한 거지요. 수영이를 외할머니네로 보낸 엄마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수영이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던 날, 엄마는 어두운 얼굴로 문 뒤에 서 있었어요. 어쩌면 수영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숨죽여 울었을지도 몰라요.
마침내 엄마가 데리러 온 날, 수영이는 쭈뼛쭈뼛 엄마의 품에 안깁니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어요. 엄마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수영이를 꼭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단단히 화가 나 있던 아이의 마음이 그제야 스르르 풀리기 시작합니다. 동심은 그렇지요. 한껏 토라져 말도 붙이지 않다가도 엄마의 따뜻한 품, 정겨운 말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어 보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환한 웃음은 어른들의 마음도 환하게 밝힙니다.
『외할머니네』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엄마 아빠의 유년 시절 정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 겪거나 들었을 이야기지요. 아이와 함께 나눌 이야기도 많아집니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는…….” 하고 말이에요. 짧은 이야기지만 『외할머니네』가 부모님과 아이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