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설명서표지가 천 느낌이 나는 거친 종이다. 검은 바다색이다. ‘손끝으로’는 반듯한데, ‘읽는’은 ‘는’이 반쯤 내려왔고, ‘지도’는 가지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꽃잎처럼 기울었다. 시인의 이름은 허공에 흩날린다. 그 밑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있다. 글자와 꽃잎은 모두 은박이다. 시집을 손으로 집어들면 손끝으로 표지의 느낌이 전해진다. 거칠어 보였는데 부드럽다. 문득 깨닫는다. ‘손끝으로 읽으니 시집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구나!’ 눈을 감고 이누이트처럼 손끝으로 시집을 읽어본다. 제목과 시인의 이름과 꽃잎이 다르지 않다. 뒤표지에는 커다란 꽃잎이 한 장 있다. 눈을 뜨고 보니 활짝 핀 살구나무다. 살구나무로 가는 길도 있다. 손끝으로 읽어야 하는 이 지도는 누가 만든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