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 새 친구
"네가 오늘부터 나와 함께 일할 꼬맹이구나."
한여름 이른 새벽, 버스365는 기사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새 일터에서 만난 새 친구가 늙은 아저씨라니! 졸음이 가시지 않아 짜증이 솟구치는데, 아저씨는 말끝 마다 꼬맹이라고 부른다. 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깜빡 졸다 붉은 신호등을 못 보고 달릴 뻔했다. 아저씨가 정신 차리라고 야단을 쳤다. 과연 아저씨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버스365는 불안하다.
도시 중심가로 들어서자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곧 오르막길이라면서 참으라고 했다. 버스365의 바퀴는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겨우 오르막에 오르자 내리막길이 보였다. 버스365는 신나게 달릴 생각에 기뻐하지만 아저씨는 또다시 잔소리를 시작한다. 덤벙대지 말고 천천히! 버스365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버스365는 아저씨와 친해질 수 있을까?
두 세대의 각기 다른 시선
《안녕! 버스365》는 이예슬 작가의 데뷔작으로, 항구 도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 버스365가 기사 아저씨와 함께 보내는 하루를 담았다. 여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버스365는 낯선 아저씨와 함께 도시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어린이로 묘사한 버스365와 중년의 기사 아저씨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버스365는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기본 욕구나 분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렇지만 꼬맹이라고 무시하면 기분이 상한다.
기사 아저씨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한 어른으로, 멀찍이 서서 관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건조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잔소리를 해대는 인물이다.
두 인물의 충돌과 엇갈림은 당연하다. 버스365가 순간순간 아저씨의 말투와 태도를 살피면서 자신의 마음을 세게 조이거나 슬며시 푸는 모습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린이의 말랑하고 순수한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안녕! 버스365》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항구 도시의 변두리 차고에서 시작해 도심과 어시장, 해변, 항구, 언덕을 하루 내내 스케치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두 인물이 표현하는 감흥에 있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각기 다른 세대의 인물들, 그들을 한 화면에 대비시키자 자연스레 세대 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아저씨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잘난 척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좋다고 주장한다. 버스365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가 두려움에 떨 때 핸들을 토닥여주는 아저씨의 손길은 어쩐지 믿음이 가기도 한다. 또 언덕에 서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볼 때 이심전심 몽글몽글한 감정을 함께 느낀다.
세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이 내내 엇갈리는 건 아니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쩌면 아저씨의 속마음
《안녕! 버스365》는 버스365가 아니라 기사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아저씨 역시 첫날, 새 일터에서 잔뜩 긴장했을 것이다. 그는 그날부터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쉬지 않고 오랜 세월 버스를 운전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수많은 사건들과 부딪쳤다. 그가 겪어 온 세월의 희로애락은 서서히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을 증발시켰다. 그에게는 이제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하다. 전혀 새롭지 않다. 그저 바퀴처럼 돌고 도는 일상만 남았다.
그러나 어느 여름 새벽, 신형 버스를 배정받은 날 그는 문득 자신을 뒤돌아보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도는 아저씨. 그가 자신의 내면 깊이 잠들어 있던 젊은 시절을 불러낸다. 그날 아저씨는 하루 종일 젊은 날의 자신을 호출해 대화를 나눈다.
이것은 작가 이예슬이 어른 독자들을 위해 숨겨둔 또다른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던 젊은 시절의 자신과 일상에 매몰된 현재의 자신이 동시에 등장하는 일인상황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