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장에 가는 날. 파블로는 잔뜩 신이 나 있다.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시장에 가면 맛있는 도넛을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아빠의 갑작스러운 자전거 시합 신청에 파블로는 황당해한다. 아빠와 파블로의 자전거 크기 차이만 보더라도 시합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는 막무가내로 시합을 진행하고, 승리는 역시나 아빠에게로 돌아간다. 파블로와 아빠의 충돌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빠는 시장에 가자마자 도넛을 먹고 싶다는 파블로에게 장보기를 끝내야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파블로가 장보기를 도우려고 물건들을 고르자 모두 사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한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파블로. 과연 파블로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불공평한 상황을 아빠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공평과 불공평 사이
아빠와 아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파블로는 시장에 가기 전부터 시장에 도착해 장을 다 볼 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아빠와의 자전거 시합은 덩치가 작아 조그마한 자전거를 타야 하는 파블로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이 비록 덩치는 클지라도 파블로가 날쌔기 때문에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 도넛을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는 상황 역시 파블로에게는 불공평 그 자체다. 하지만 아빠는 파블로뿐 아니라 자신도 도넛을 먹고 싶지만 참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공평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같은 상황임에도 파블로와 아빠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틀린 말은 없다. 아빠의 말이 맞을 수도, 파블로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공평과 불공평이란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상황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평과 불공평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유쾌하게 전달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아빠와 아이의 일상 대화를 통해 공평과 불공평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들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공평과 불공평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다.
어른들에게 묻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공평하게 대했을까?’
이 책은 공평과 불공평이 입장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상황을 통해 알려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 딱 한 가지, 확실히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숨겨 놓았다. 바로 자신은 왜 혼자서 아무런 결정을 못 하느냐는 파블로의 말에 아빠가 자신이 보호자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어린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 보호자들 중에는 파블로 아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의 말은 사실 어른들이 무심코 어린이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기 위한 장치이다.
파블로의 아빠는 자전거 시합이 불공평하다는 파블로의 항의를 무시한 채 시합을 진행했다. 시합을 할지 말지 파블로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 또, 도넛을 먹는 시간도 파블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아빠의 결정으로 정해졌으며, 장봐야 할 물건들 역시 파블로가 고른 물건들이 아닌 아빠가 선택한 것들로만 채워졌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파블로에게 어떠한 선택권과 결정권을 주지 않은 것이다. 아빠의 행동은 과연 파블로를 위한 걸까?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함에 있어 좁은 시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른의 역할은 옆에서 더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게 조언을 해 주는 것이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파블로처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함께 읽는 어른들에게는 그동안 어린이의 의견에 얼마나 진심으로 귀 기울였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해 어린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양육 태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