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variable: nuriDbcon in /opt/apache/htdocs/dreamlib/book/book_view.php on line 7
Warning: mysqli_query() expects parameter 1 to be mysqli, null given in /opt/apache/htdocs/dreamlib/book/book_view.php on line 7
Warning: mysqli_fetch_array() expects parameter 1 to be mysqli_result, null given in /opt/apache/htdocs/dreamlib/book/book_view.php on line 8 꿈꾸는도서관 :: Dreaming Library
상처 입은 존재들에게 전하는 사랑과 애도의 노래
일상과 현실을 몸으로 삼으며 삶의 비극을 구체화하는 10년 만의 새 시집
"이창수 시인에게 복서의 기질이 느껴진다. 결코 엄살 부리지 않는다.
아파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정면과 마주한다.“ -류근(시인)
이창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횡천』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은 평범한 이웃이 아니다. 말은 통하지만 멀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 사람들 속에 시인도 끼어 있다.
시인이 보고 자란 모든 것들이, 내가 알지 못하게 변해가는 상황이 마치 누군가 내 기억을 삭제하는 듯해 보인다. 일상적인 물건, 비누나 칫솔 따위에서 시집, 술친구로부터 머리 위에 빛나던 조약별까지 기억에서 박박 지워가기에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요행히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만은 기억하고 있지만 이 기억 또한 곧 사라질까 두렵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풍경 속에 살고 있는” 것들이 “혼신을 다해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를 기억해 낼 수 있기를.
1. 봄의 동력
봄의 동력 ______ 10
사슴 ______ 11
복내 ______ 12
횡천橫川 ______ 13
침묵 ______ 15
털신 한 켤레 ______ 16
한려 ______ 17
섬진강 1 ______ 18
섬진강 2 ______ 19
이 세상에 없는 세상 ______ 20
내구름 ______ 21
흰 알약 ______ 22
망초 ______ 23
산초 말리는 계절 ______ 58
가족 ______ 59
가난한 재벌 ______ 60
구름의 표정 ______ 62
수몰민 ______ 63
내 친구 이기권 ______ 64
통영 ______ 66
두승산 ______ 67
땅벌 ______ 68
상무지구 ______ 69
눈보라 ______ 70
음력 ______ 71
화엄무인텔 ______ 72
바위 선생 ______ 74
봄봄 ______ 75
┃해설┃이진우(시인)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______ 78
197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당촌에서 이형래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85년 광주진흥고등학교에 입학 문학동아리 [가문비]에 가입하였다. 오랜 방황 끝에 조태일 시인이 재직하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시를 썼으나 거듭 낙선하였다. 실망하여 소설로 진로를 바꾸려던 찰나에 시 전문지 [시안] 신인상에 「겨울 물오리」 등 5편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 봄이었다. 2002년 대학원을 마치고 중앙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 받아 첫 시집 『물오리사냥』을 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0년에 걸쳐 광주대, 중앙대, 목포대, 협성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2010년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를 냈다. 2013년 말 광주로 내온 후 2015년 고향 보성에서 인문학 학교인 [(사)시가흐르는행복학교]를 만들어서 이사장을 맡았다. 2016년 보성 예총 초대 회장을 맡았으나 3년 만에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와 광주 남구청의 지원을 받아 인문학 학교인 남구대학을 개설 운영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청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197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당촌에서 이형래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85년 광주진흥고등학교에 입학 문학동아리 [가문비]에 가입하였다. 오랜 방황 끝에 조태일 시인이 재직하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시를 썼으나 거듭 낙선하였다. 실망하여 소설로 진로를 바꾸려던 찰나에 시 전문지 [시안] 신인상에 「겨울 물오리」 등 5편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 봄이었다. 2002년 대학원을 마치고 중앙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 받아 첫 시집 『물오리사냥』을 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0년에 걸쳐 광주대, 중앙대, 목포대, 협성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2010년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
"이창수 시인에게 복서의 기질이 느껴진다. 결코 엄살 부리지 않는다.
아파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정면과 마주한다.“
-류근(시인)
이창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횡천』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은 평범한 이웃이 아니다. 말은 통하지만 멀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 사람들 속에 시인도 끼어 있다.
시인과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으로 등장하는, 화장하면 이십 대로 보이는 오십 살 ‘명순 씨’(「사슴」)나 휴일 대낮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신음 때문에 방에 없는 것처럼 하게 한 ‘얇은 벽 너머 옆방 여자’(「얇은 방」) 또한 어려운 처지였다. 상황, 형편, 환경 모두가 녹록지 않은 시절이었고, 그들에게나 시인에게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검은 구두들이
지상과 지하로 가는 계단 울렸다
입 벌린 지하철 거대한 구덩이 앞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육삼 빌딩 정수리에
겨울 몰고 오는 검은 구름이
이합과 집산 거듭하고 있었다
여의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도를 아십니까?」 일부
시인은 몇 갈래 갈림길을 거쳐 도시 자본의 심장 여의도에 발을 들여놓아 보기도 했지만, 미래를 수치로 예측하는 검은 구두들마저 우왕좌왕했으며 금빛으로 빛나야 할 육삼빌딩 꼭대기는 우락부락 검은 구름만 보여주었다. 시인은 ‘누군가’의 입을 빌려서라도 자신에게 도(길, 道)를 아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도시가 가리키는,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두가 아는 그 길은 시인이 살아온 길, 살아가려는 길과 달랐다.
시인 조창환(아주대학교 명예교수)은 “서사적 에피소드를 단순하게 처리하고 대상을 간결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스며있는 측은지심과 연민의 정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려낼 때도 그의 문체는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며 이창수의 시가 가진 문체의 독특한 매력을 강조했다.
위트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가족과 고향의 신화
시인은 시골, 전라남도 보성 복내면이라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1970년에 태어난 그의 세대는 타의로 자의로든 시골, 집을 떠나 무섭게 팽창하는 도시로 나갔다. 다들 그래서 그렇게 했지만, 시인은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혹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도시를 겪고서 돌아와 보니 고향이 보였고, 다시 보였고, 다르게 보였다.
문화는 세태에 따라 변해간다. 오랜 문화와 급격히 변하는 세태는 엇박자를 내기 마련이다. 시골과 도시의 부조화도 변화 속도와 방향이 다른 데서 온다. 모두 홀린 듯 발전 일변도, 성장 우선만 외쳤으므로. 누가 뒤처지든 누가 희생당하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독식한 승자가 우상처럼 떠받들어지던 시대였다. 경쟁에 내몰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올바른 판단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시절이었다.
친구가 진돗개 새끼 얻어왔다
후배는 귀 보고 순종이 아니라고 했다가
친구에게 면박당했다
중학교 건물 짓는 인부들에게 고기 얻어먹었다
자립을 아는 개였다
친구와 후배는 빳빳한 꼬리 보아 순종이라 하고
풀어진 눈과 처진 귀로 보아 잡종이라며 다툰다
휘파람 불어 금동이를 불렀다
꼬리 세운 금동이가 머리 내밀었다
근친상간이 순종 만드는
개의 역사를 생각했다
― 「금동이」 전문
순종이냐 잡종이냐가, 그러니까 혈통이 돈이 되고 돈이 되어야 값지게 여겨지는 세태가 시인은 의아하다. 본질보다 외형과 금액을 따지고 앞세우다 보니 인류가 그토록 경멸하던 근친상간을 가족보다 사랑하는 반려견에게 강요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인간과 개의 역사 중 애완견이 생산된 시기는 몇백 년에 불과하다. 여러 품종의 개를 교배시키고 유전 형질을 고정시키기 위해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기준에 맞지 않는 새끼는 모두 도태시켰는데, 목적은 상품이 되어버린 개가 인간의 유대 관계를 다시 쓰게 만든 상황은 도시와 시골 관계에서도 별다르지 않다.
고영민 시인은 이창수 시인이 "일상과 현실을 몸으로 삼고 있으며, 삶의 비극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가족과 고향의 신화를 삶의 구원처로 삼고 경험적 진실을 통해 상처 입은 존재들에게 곁을 내주며 사랑과 애도의 노래를 건네고 있다"고 했다.
소외되었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묶는 경험적 휴머니즘
시냇물이 옆으로 흘렀네
마을에 식자가 있어 횡천이라 불렀네
시냇물 따라 버드나무가 자라고
버드나무는 새와 구름 불러왔네
냇가에 작은 술집도 생겼다네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옆으로 걸었네
횡천 거슬러 올라가면
푸른 학 날아다니는 청학동이 나온다네
시절이 하 수상해지면
순한 사람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살았네
사나운 도적들 찾아왔지만
나무꾼이 되거나 더 깊은 산으로 갔다네
횡천에 다리가 놓이고 시장이 섰네
길이 포장되고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했네
사람들도 앞만 보고 걸었네
구불구불 길도 직선으로 바뀌고
논도 밭도 바둑판 되었다네
사람들은 직선을 숭배했다네
그러든 말든 횡천은 옆으로만 흘렀다네
횡천 가로질러 그물이 쳐 있었으나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네
밤 강물에 일월성신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건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고기라서
마을 사람들 본체만체 지나갔다네
― 「횡천橫川」 전문
개발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이뤄진다. 도시는 개발을 원하는 자들의 공간이 돈이 흘러가야 하는 길을 지도 위에 그어 버리면 피와 땀으로 지켜온 복잡다단한 농촌의 역사, 내력, 문화, 이야기, 추억, 삶의 양식은 직선으로 잘려 조각나 버린다. 그러나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도 하늘의 이치는 변하지 않음을 횡천은 보여주고 있다. 횡천에 뜬 일월성신은 우주의 시간이고 질서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그물에는 걸리지 않는다. 시인의 눈은 그것을 본 것이리라.
유장한 세월 동안 자연과 어울리며 사람들이 만들어 낸 풍경은 자본의 칼로 난도질당했다. “앞으로만 걸어라, 앞만 보고 뛰어도 모자란 판국에 옆으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반동분자들은!” 이런 자연스러움이 낯도 모르는 외지인들에 의해 깎이고 잘려나가는 상황이 시인은 불편하고 황당하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시인이 보고 자란 모든 것들이, 내가 알지 못하게 변해가는 상황이 마치 누군가 내 기억을 삭제하는 듯해 보인다. 일상적인 물건, 비누나 칫솔 따위에서 시집, 술친구로부터 머리 위에 빛나던 조약별까지 기억에서 박박 지워가기에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요행히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만은 기억하고 있지만 이 기억 또한 곧 사라질까 두렵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풍경 속에 살고 있는” 것들이 “혼신을 다해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를 기억해 낼 수 있기를.
『횡천』은 우리 시대의 삶이 온전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누가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라도 시인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곱씹어보면 지금과 다른 얼굴과 표정을 내면 깊이 묻어두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고달픈 현대사와 숨겨 둔 개인사를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으로 말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를 그의 처지를 우리는 모두 암묵적으로… 이해한다.
한 시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고 자라 중년이 되도록 보고 배우고 알게 되고 느낀 모두를 시로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입장에 서 보는지 독자는 알기 어렵다. 그 어려움을 덜어주겠다고 시인이 고주알미주알 사연을 휘갈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눈 밝은 독자가 고마운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멀리서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한국시가 회복해야 할 지향점
이창수의 시는 선연하다. 요즘 한국시에 흔히 보이는 장황함이나 지리멸렬이 없다. 그의 시의 언어는 잘 정돈되어 있으며, 간명한 구조 속에서 적절하게 함축되어 있다. 이창수의 시편들이 견인해 보여주는 이런 저력들이야말로 요즘 한국시가 회복해야 할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건청(시인)
현실세계의 모순을 정면에서 비판하게 되면 자칫 긴장감을 잃고 따분해지기 쉬운데 특히 그는 풍자와 함께 은유와 상징을 통해 심미적 표현가치와 인식의 깊이를 추구여 시의 완성도를 성취한다. 이런 그만의 독특한 언어형식과 표현방법 때문에 나는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즐겁고 아프고 ‘재미’있었다. -감태준(시인)
이창수의 시는 어떤 도덕이나 이념의 주장보다는 사실의 관찰이 돋보이는 현실주의의 세계에 속한다. 그의 시들은 물물들의 현존을 쓰다듬는다.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사람의 체온이나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시가 많은 요즘, 이창수 시인의 시작품들은 따뜻함을 특징으로 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가족을 형상화하는 등 촌스러움과 넉살이 담겨 있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