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실리아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제주 조천에서 책방카페 ‘시인의 집’을 운영하며 쓴 글 안에는 시인이 살아낸 제주의 모습, 문학과 세상에 대한 속 깊은 사유가 진실되게 담겨 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썰물과 밀물의 변화, 숭어의 도약, 까치복과 저어새와 바다직박구리와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이 땅 어디보다 아름다운 저녁놀과 그 밖의 것들이 시와 삽화가 되었고, 이 책은 ‘꿈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선물이 된다.
제주에 美치다 _7
나의 심미안은 책으로부터 왔다 _16
황금빛 서정 _24
노래는 내 시의 내재율 _30
어느 제대병의 고백 _38
시가 된 영화 _46
내 마음도 지옥 _53
이래서 인생 _59
탕진을 부추기다 _63
복순 씨 _70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믿음 _82
그림에 울다 _88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건넨 인사 _95
맛있는데 유쾌하기까지 한 _101
안동 여자, 김서령 _106
나도 이런 카페의 단골이고 싶다 _113
잘 가라, 가닿아라 인간 세상에 _122
천국에서 지급된 재난지원금 _127
박완서라는 선물 _137
제주 바당이 낳곡 질룬 생 _142
심금을 울리는 일 _152
매혹과의 동행 _160
고아의 노래 _167
우리 시대의 지성, 한국 문학의 품격 _178
나만 알고 싶은 곳 _188
사랑과 토마토와 물거품과 장미를 노래하라 _198
나는 지금 꿈을 살고 있다 _206
작가의 말 _212
손세실리아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제주 조천에서 책방카페 ‘시인의 집’을 운영하며 쓴 글 안에는 시인이 살아낸 제주의 모습, 문학과 세상에 대한 속 깊은 사유가 진실되게 담겨 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썰물과 밀물의 변화, 숭어의 도약, 까치복과 저어새와 바다직박구리와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이 땅 어디보다 아름다운 저녁놀과 그 밖의 것들”(19쪽)이 시와 삽화가 되었고, 이 책은 ‘꿈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선물이 된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
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
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도 저렇듯
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
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런 속내를 알아챈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 왔습니다
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
세금 한 푼 물지 않는
—「바닷가 늙은 집」 전문
“여차저차 인연으로 맞춤한 집을 만났으나 말이 집이지 실제는 붕괴 직전인 폐가였다. 오랜 세월 인간들로부터 홀대받아 상처투성이인, 그런 집에 한눈에 홀렸으니 숙명일 테다. 잔디와 꽃나무를 식구로 들이고, 기둥을 보강하고, 파손된 문짝을 교체하고, 바다로 향한 현무암 집담을 낮추는 등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돌멩이 하나, 마룻장 한 쪽 버리지 않았다. 백 년 누옥의 자산이며 역사이니 무엇으로든 재활용하려 했다. 마당의 주춧돌은 집담으로 거듭났고, 마룻바닥은 탁자로 재탄생되었다.
수시로 체온을 나누고 말을 걸고 눈을 맞추길 10여 개월, 집이 비로소 집다워졌다. 잔디는 제법 초록초록하고 다년생 풀꽃인 가자니아는 열 몫을 해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썰물과 밀물의 변화, 숭어의 도약, 까치복과 저어새와 바다직박구리와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이 땅 어디보다 아름다운 저녁놀과 그 밖의 것들도 덩달아 활기를 찾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집을 내게 보낸 건 누군가의 섭리임을, 내가 이곳을 찾은 게 아니라 집이 나를 불러들였음을.”(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