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생명의
안녕을 빌어 주는 그림책
함박눈이 세차게 내리는 밤, 아기 고양이는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나 여기 있어요》는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아기 고양이의 작은 외침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생명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혼자서 먼 길 떠나는 아기 고양이의
행복을 바라는 따뜻한 판타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틈에 많은 작은 생명들이 혼자서 쓸쓸히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그들도 간절한 소원이나 소중한 꿈,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 책은 안타깝게 이곳을 떠나는 작은 생명들이 다음에 도착한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여기,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쓰러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런 아기 고양이를 향해 저 멀리 노란 호롱불로 어두운 길을 밝히며 곰 아저씨가 다가옵니다. 혼자였던 아기 고양이는 곰 아저씨의 도움으로 꿈 같은 길을 떠납니다. 함께 놀던 정다운 친구들을 만나 뛰놀고, 못다 이룬 꿈을 멋지게 펼쳐 보기도 합니다. 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리운 친구가 있고, 소중한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고양이는 보고 싶던 엄마를 만납니다. 그렇게 못다 이룬 소망을 이뤄낸 아기 고양이는 진짜 먼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칩니다. 그 길도 무섭지 않게 곰 아저씨가 여전히 곁을 지켜 줍니다.
아기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눈 무덤이 생기고, ‘나 여기 있어요’라는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던 작은 생명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책은 아기 고양이에게 대답해 줍니다. 우리가 옆에 있다고 말이지요.
다정한 안내자,
곰 아저씨의 든든한 위로
곰 아저씨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아기 고양이의 다정한 안내자가 되어 줍니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달리고, 사나운 강을 건너고, 으스스한 숲을 지날 때도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 곁을 든든하게 지켜 줍니다. 검은 갓을 쓴 곰 아저씨는 우리 전통 장례 문화 속 ‘꼭두’를 상징합니다. 상여를 장식하는 목각 인형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두란 이 세상과 새로운 세상의 경계에서 길 떠나는 이들이 새로운 곳에 잘 도착하도록 도와주는 환상의 존재입니다. 그중에서도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의 슬픔을 위로하며 도착하는 그곳까지 함께 해 주는 든든한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꼭두에는 안내자 외에도 나쁜 기운은 물리쳐 주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재롱을 부려 즐겁게 해 주는 역할도 있습니다. 사나운 파도를 헤쳐 나갈 때는 뱃머리의 용이, 으스스한 도깨비 숲을 지날 때는 하늘에서 봉황이 나타나 험난한 길을 지켜 주고, 아기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거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묘기를 부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과 물고기, 호랑이, 새 들도 등장해 곰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아기 고양이를 지켜 주며 든든한 꼭두의 역할을 해낸답니다.
이런 곰 아저씨와 친구들 덕에 아기 고양이는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먼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여기 있어요》는 여러 친구의 도움으로 아기 고양이가 힘들지 않게 먼 길을 떠났을 거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이렇듯 꼭두의 역할을 하는 곰 아저씨는 떠나는 이들뿐만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도 위로의 인사를 전합니다.
목탄으로 그려 낸
담담한 추모곡
원혜영 작가는 길 위에서 쓸쓸하게 홀로 먼 길을 떠나는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안타깝게 떠난 작은 생명들에게도 그들만의 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림책에서나마 그 꿈을 펼쳐보게 하고 싶었답니다.
작가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굵은 선과 거친 느낌의 검은 목탄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목탄의 검은색과 흰 눈을 강렬하게 보여 주는 첫 장면은 눈 쌓인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도로에 쓰러진 아기 고양이가 대조되어 안타까움을 극대화합니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장면부터는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 세 가지 색채를 써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했습니다. 색으로 구현한 배경 안에서 아기 고양이의 행복한 모습이 다채롭게 표현됩니다.
작가가 세심한 선과 색으로 그려낸 담담한 이야기가 먼 길 떠나는 작은 생명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