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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북 추천도서]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

16,800 원
  • 저자 : 김용남
  • 출판사 : 바틀비
  • 출간일 : 2022년 03월 25일
  • ISBN : 979-11-91959-04-8 03910
  • 제본정보 : 반양장본
일반 통사와는 달리 같은 시기 세계 여러 나라들의 상황과 비교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서. 조선 건국부터 멸망까지의 주요 흐름을 33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정리하면서 500년 조선의 빛과 그늘을 살핀다.
세계사의 창에 비친 조선은 건국 초기인 15세기만 해도 시스템과 문명 수준, 인권의식과 기회의 측면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를 앞선 선진국이었다. 그러한 조선이 왜 19세기 ‘헬 조선’으로 추락했을까.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이 짧은 절정과 추락 과정을 7개의 장에 걸쳐 동시대의 외부 세계와 대조하며 매섭게 탐색한다.
들어가며 : 눈 맑은 제자들과의 역사 대화 ...007
추천사 : 독자를 성장시키는 역사책 ...013

Ⅰ. 발단: 14세기, 조선 건국에 정당성이 있는가?
1.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타당했는가? ...025
2. 신진사대부는 존재했는가? ...032
3. 굳이 왕위를 빼앗아야 했는가? ...036
4. 조선의 시스템은 성공했는가? ...046

Ⅱ. 절정: 15세기, 누가 성군이고 누가 폭군인가?
1. 백성에게 최고의 국왕은 누구인가? ...057
2 세종을 어떻게 볼 것인가? ...065
3. 최고의 능력을 지녔던 왕은 누구인가? ...072
4. 태종과 수양은 어떻게 달랐나? ...077
5. 수양의 유일한 업적은 무엇인가? ...082
6. 유능한 장군은 누구에게 죽는가? ...089
7. 성종은 왜 혼인보조금을 지급했는가? ...092

Ⅲ. 위기: 16세기, 조선은 왜 위기를 맞이했나?
1. 까불이는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101
2. 사림은 무엇이 문제였나? ...108
3. 조선 시스템의 맹점은 무엇이었나? ...114
4. 임진전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119
5. 선조는 유능했나 무능했나? ...130

Ⅳ. 전환: 17세기, 변화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1. 광해군은 오해받고 있는가? ...139
2. 병자전쟁은 막을 수 있었나? ...149
3. 소현세자 죽음의 가장 큰 문제는? ...161
4. 북벌은 과연 가능했나? ...166
5. 조선은 군약신강 국가였나? ...174
6. 조선은 언제부터 망하기 시작했는가? ...182

Ⅴ. 전개: 18세기, 개혁인가 수구인가?
1. 서인은 어떻게 장기집권했는가? ...195
2. 조선 왕 암살 의혹은 사실인가? ...199
3. 조선 후기 르네상스는 존재했는가? ...209
4. 사도세자는 죽어야만 했는가? ...219
5. 정조는 왜 실패했는가? ...226

Ⅵ. 하강: 19세기, 헬 조선 도래는 필연이었나?
1. 조선의 운명이 달라질 뻔한 사건은? ...241
2. 위로부터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249
3. 한·중·일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는? ...259
4. 갑오년,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264

Ⅶ. 결말: 20세기, 누가 책임을 졌는가?
1. 누가 나라를 팔았는가? ...279
2. 조선 망국은 왜 8월 29일에 발표되었나? ...289
김용남 어려서부터 책에 묻혀 살았다. 과학고를 거쳐 공대에 입학했다가 다시 사대에 진학해 국어와 사회를 복수전공했다. 21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문학, 독서 등 국어과목과 한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 등 사탐과목은 물론이고 한문, 철학, 문화비평까지 두루 맡아 가르쳤다. 재직 중 80여 개 국가를 자유롭게 배낭여행 하면서 세계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대세 세계사》를 썼다.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는 항상 동시대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하면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것을 권유했다. 이번 책은 조선사에 그와 같은 방식을 적용한 결과물이다. 2022년 휴직계를 내고 자전거 전국 순례, 주요 명산과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kimsudosa@hanmail.net
세계사의 창으로 조선을 살핀다
한동안 젊은 세대가 사회를 냉소할 때 ‘헬 조선’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조선의 역사는 부정적으로 비친다. 그런데 과연 조선은 지옥에 비유할 만큼 후진적인 나라였을까?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본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나왔다.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1392년 건국부터 1910년 망국의 날까지 조선의 역사를 톺아보는 역사서이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생애 주기를 꿰는 통사 역사서는 기존에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 책은 앞에 붙은 ‘세계사와 통하는’과 ‘매운맛’이라는 수식어가 유독 눈길을 끈다.

먼저 이 책은 세계사의 창을 통해 조선을 비교 고찰한다는 점에서 여타 역사서와 뚜렷이 구별된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오랫동안 가르쳤고 지구촌 80여 개 국가의 역사 문화 현장을 수시로 답사하며 세계사의 산 지식을 쌓아온 저자는 ‘자국의 역사만 아는 것은 자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조선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같은 시대 세계 여러 나라 상황과의 비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기별로 조선을 살피면서 같은 시기 다른 나라들의 상황, 또는 시대가 다르더라도 세계사에 등장한 유사한 성격의 역사적 사건과 경험을 수시로 소환하여 조선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근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고려 멸망과 조선 개국의 불씨를 당긴 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이 타당한 일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저자는 요동 정벌이 일종의 선제 예방전쟁으로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선제 예방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에 외교적으로 포위되자 오히려 선제공격으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죠. 20세기의 일본도 국력이 몇 배나 강한 미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펼쳤고요. 하지만 프로이센은 초반 우세에도 불구하고 수세에 몰렸고, 러시아의 여제가 급사하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일본도 초반 우세를 잡았지만 결국 패망했고요. 약소국의 예방전쟁은 무리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_본문 30쪽


15세기의 선진국 조선은 왜 헬 조선이 되었나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사의 창을 통해 살펴본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 ‘헬 조선’이라는 비난은 타당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헬 조선으로 요약되는 조선의 모습은 19세기의 상황이다. 건국 초기인 15세기의 조선은 뛰어난 시스템을 갖추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보다 문명 수준이 앞서 있었다.

지혜 : 그럼 이쯤에서 조선과 유럽을 한번 비교해보죠. 조선이 유럽보다 어느 정도 앞서 있다고 봐야 할까요? 
김 선생 : 문종이 승하한 연도가 1452년입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453년을 유럽에서 중세가 마무리된 상징적인 연도로 거론하는 학자가 많습니다. 1453년은 고대 로마의 정통을 이어오던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했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즉 유럽은 이제야 근세 국민국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도 1450년 즈음에 발명됩니다. 반면 조선은 진작 인쇄술을 갖추었고,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 중략 ...
인권 의식에서는 비교도 안 됩니다. 조선의 장점으로 빼놓지 않아야 할 것 중에 장애인 배려가 있습니다. 조선은 장애인을 학대하면 가중 처벌했고, 고을 수령을 파직하기도 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를 모실 경우에는 부역을 면제해 줬습니다. 장애인의 관직 등용에 차별이 없었습니다. 동시대의 유럽은 장애인을 매우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_본문 75쪽

15세기 조선은 국가 운영 시스템, 기술과 문화 수준, 인권 의식과 민본 사상 등 소프트 파워가 유럽과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 비해 높은 나라였다. 물질적(하드 파워)으로도 태종에서 문종까지의 노력으로 조선 왕조는 막대한 곡물을 국가 재정으로 비축하여 당시 비축량은 인구 비율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같은 시기 유럽의 관리 채용이 주로 매관매직으로 이뤄진 데 비해 조선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해 관리의 자질과 유능성이 높았으며 초기 문과 급제자 가운데 평민의 비율이 40~50%에 이를 만큼 기회가 열린 사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뛰어났던 조선이 15세기의 절정을 지난 뒤 점차 내리막을 걷는다는 점이다.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본문 7장 구성인데, 각 장에는 연극의 막 구성처럼 발단-절정-위기-전환-전개-하강-결말 등의 부제가 붙어 있다. 보통의 연극이 발단, 전개를 거쳐 절정을 맞는다면 조선은 때 이른 절정 뒤 상당히 오랜 침체와 위기, 하강 국면을 겪은 셈이다.

건국 초 세계사에서 모범적 선진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던 조선이 어떻게 해서 19세기 ‘헬 조선’의 치욕에 이르게 되었을까? 3장부터 저자는 그 내막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진단해 나간다. 이 책 제목의 조선사 앞에 ‘매운맛’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과거에 벌어진 일을 시대순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의 순한 맛이라면,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성찰하고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역사의 매운맛”이라고 자평한다.
매운맛의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17세기 말에 이르면 조선 사대부들은 크롬웰 때의 잉글랜드나 지금의 탈레반처럼 극단화된다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제 사대부들은 나라보다는 소속 붕당을, 군주보다는 스승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환국에 따라 상대 붕당 서원을 강제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자산서원은 다섯 차례나 훼손과 복원을 반복했습니다. 당파 싸움은 심해졌지만 양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일치단결했습니다. 서원은 농민을 수탈했고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서원을 중심으로 문중 결속력이 강해졌습니다. 서얼과 딸에게는 상속이 배제되고 아들이 없으면 양자가 재산을 모두 챙겼습니다. 성차별이 심해졌고, 제례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중앙정부의 법령보다 양반의 이익을 보호하는 관습이 더 우선되었습니다. _본문 189쪽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애민사상이 무너지고 내부 개혁의 절체절명의 기회도 놓친 조선은 점차 백성과 유리된 지배층만의 국가,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 나라로 전락한다.

민본주의 국가인 조선은 주모자에게는 잔혹했지만, 단순 가담자에게는 선처를 베풀곤 했습니다. 그런데 홍경래의 봉기 때는 포로가 된 2983명 중에 남자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 성인 남성 1917명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조선의 가장 큰 장점인 애민사상이 무너졌습니다. _본문 243쪽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 후에 철도 부설권, 금광 채굴권 등을 외국에 계속 넘기고, 그 일정 지분을 본인이 받았습니다. 고종이 넘긴 운산금광만 해도 당시 동양 최대의 금광으로 거기서 나온 누적 순익은 국가 부채의 몇 배였습니다. 그런 노다지를 헐값에 외국에 넘겨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치를 부렸고요. 그 빚 감당은 민중의 몫이었습니다. _본문 285쪽


경제, 기후, 과학기술이 역사에 미친 영향 탐색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가 다른 역사서와 구별되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경제, 기후, 과학기술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역사의 큰 흐름을 쉽게 일별하기 위해 세기별 국왕 중심의 정치사를 씨줄로 삼지만, 날줄에서는 정치사 못지않게 경제와 기후의 변화, 대기근과 전염병의 확산, 과학기술이 백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탐색한다.

18세기 끝인 1799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지요. 19세기 초에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폭발합니다. 화산재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덮었고,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조선은 순조 14년에서 16년에 걸쳐 무려 130만의 호구가 감소합니다. 호구가 감소하니 세금 수입이 줄어 재정은 부족했고, 탐관오리는 남은 백성을 더욱 쥐어짰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죠._ 본문 243~244쪽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출된 기술은 무엇이며 조선 역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왔는지도 살펴본다. 외부 세계와 유기적으로 얽힌 역사의 특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감불甘佛은 까불이, 검동儉同은 검둥이의 한자표기로 생각되는데요. 실록에 딱 한 번 나오는 김감불과 김검동은 인류 역사를 엄청나게 바꿉니다. 이들은 은광석에서 획기적으로 은을 대량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연산군은 기술을 시험해보고 사용을 지시하지요. 그런데 중종이 즉위하면서 연산군 때의 과다한 사치 풍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은 생산을 중단합니다. 많이 생산하면 명나라의 은 요구가 늘어날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은 생산이 중단된 틈을 타서 일본이 연은분리법을 알고 있는 기술자를 데려갑니다. 결국 일본의 은 생산이 폭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중략) ... 이어 일본은 은광의 경제력과 조총을 바탕으로 조선을 침공하지요. 바로 임진전쟁입니다. 정리하면 연은분리법의 유출이 임진 전쟁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_본문 104~105쪽


제자와 주고받는 33가지 돌직구 질문과 대답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저자 김 선생과 제자 지혜가 조선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채택했다. 지혜는 저자의 역사 수업을 함께한 여러 열성 제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순수한 호기심과 젊은 시각으로 끊임없이 던진 학생들의 33가지 질문은 그대로 각 단원의 주제가 되면서 500년 조선의 빛과 그늘을 파헤치는 책의 뼈대를 이루었다.
지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결국 쿠데타 아니냐며 쿠데타로 개창한 왕조가 정통성이 있는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는 아닌지 따져 묻는다. 숱하게 많았던 조선 왕 암살 의혹이 진실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호기심을 반짝거리기도 한다. 정규군이 하루도 못 싸우고 외국에 망했냐며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 군인과 사대부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개탄하기도 한다.
위화도 회군을 당대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근대국가에서의 쿠데타나 사대주의와 동일선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을 해주면서 진땀을 빼는 한편 주관이 뚜렷한 제자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저자의 마음과 교실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처럼 <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는 생동감 넘치는 실시간 대화를 통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 시각과 세계사의 격변을 체험한 기성세대인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삶의 관조를 함께 읽는 즐거움도 제공한다.

가까운 우리 역사이지만 사실 그 심층을 잘 몰랐던 조선사를 한번쯤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눈 맑은 제자들과 역사 마니아 선생님의 대화에 슬쩍 끼여 들어보는 건 어떨까?

[내용: 본문 맛보기]

프랑스 혁명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죠. ‘루이 왕은 무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루이가 무죄면 혁명이 유죄가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혁명을 유죄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니 루이가 죽어야 한다’. 어쩌면 고려 말의 상황도 같은 흐름이었을 겁니다. 위화도 회군을 유죄로 만들 수 없으니 고려는 망해야 했습니다. (43쪽)

요즘 태종의 평가가 상향되고, 세종의 업적에 이견이 제기되는 이유는 조선 시대와 현대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교 가치관에서는 세종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은 서구적 실용주의가 더 지배하고 있습니다. 명분보다 현실 감각을 중시하고, 인품보다 능력을 중요시하죠. 한편으로는 기득권층의 역사가 아닌 하층민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해왔습니다. 이런 사회 인식의 변화가 태종과 세종에 대한 평가를 변화시킨 원인이겠지요. (71쪽)

명나라는 영락제가 재정을 파탄시켜 지폐를 휴지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화폐 제도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560년부터 일조편법一條鞭法 제도를 시행해서, 세금을 은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일조편법은 일본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은이 마카오를 거쳐 들어왔기에 정착될 수 있었습니다. 즉 중국 화폐가 은본위제로 정착된 것에도 연은분리법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역사상 한국인이 세계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친 경우는 없었습니다. 금속활자 발명, 한글 창제 등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국내에 국한된 것이었죠. 그 점에서 김감불과 김검동은 세계사를 바꾼 위인으로 올려도 됩니다. 아쉬운 점은 그 이익을 일본이 얻은 것입니다. (105쪽)

도자기 기술자는 일본의 대우가 훨씬 좋았기에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은 도자기 기술이 크게 발전했고, 유럽으로 수출도 시작합니다. 아리타 자기有田燒는 유럽 내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았지요. 임진전쟁이 도자기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 때 죽이지 않는 포로가 과학기술자입니다. 대학살자였던 티무르도 기술자는 데려가서 수도 사마르칸트를 건설하는 데 썼고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치 전범 중에 로켓 과학자는 미국에 건너가 좋은 대접을 받았지요. (128~129쪽)

외교에서의 광해군의 업적을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내치였습니다. 광해군의 과오 중에 가장 큰 것은 백성을 착취한 것입니다. 광해군은 대규모의 궁궐 여러 채를 연이어 짓습니다. 국가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참고로 임진전쟁 후 선조 때는 재정지출 삭감을 통해 백성 부담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광해군의 민생 정책은 선조보다 못했던 거죠. (144쪽)

서원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보급하고 오로지 한목소리만 내게끔 세뇌했습니다. 파당별로 지역별로 나라가 나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대부들은 나라보다는 소속 붕당을, 군주보다는 스승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환국에 따라 상대 붕당의 서원을 강제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자산서원은 다섯 차례나 훼손과 복원을 반복했습니다. 당파 싸움은 심해졌지만 양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일치단결했습니다. (188쪽)

정조가 실패한 원인은 세종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정조는 모범 군주인 세종을 이상향으로 삼고 모방하는 정책을 폈지요. 하지만 정조는 새로운 시스템을 짜야 하는 시대의 군주였습니다. 정조는 주어진 시스템을 보완 발전시킨 세종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척까지 쓸어버린 태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피를 보더라도 혁명 수준의 변화를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시스템의 혁신을 꾀하기보다 군주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했습니다. 무력한 왕이 나오면 언제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236쪽)

19세기 초에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폭발합니다. 화산재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덮었고,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조선은 순조 14년에서 16년에 걸쳐 무려 130만의 호구가 감소합니다. 호구가 감소하니 세금 수입이 줄어 재정은 부족했고, 탐관오리는 남은 백성을 더욱 쥐어짰습니다. (244쪽)

서양의 혁명은 부르주아들이 이루었지만 조선의 상업 자본은 권력에 맞서 싸우기보다 권력에 결탁해서 이권을 보장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경강상인은 매점매석으로 서울의 쌀값을 폭등시켜 막대한 이익을 취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도시빈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정부는 빈민에게는 무거운 벌을, 경강상인에게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습니다. 경강상인은 고위 권력자들과 줄이 튼튼했기 때문이죠. (251쪽)

사실 망국 조약은 8월 22일에 체결되었습니다. 일제가 조선 민중의 반발을 의식해서 발표 시일을 며칠 늦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다릅니다. 을사조약 이후 저항이 실패하면서 조선 민중은 체념한 후였고, 일제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일제는 8월 25일에 발표 예정이었는데 조선 정부가 8월 29일로 늦추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유는 28일에 대한제국 황제 즉위 4주년 축하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망국을 하루 앞둔 날에 달콤한 파티를 웃으면서 즐기는 관료들의 모습은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의 저서를 통해 온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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